황폐
from 오늘, 나 2010/08/13 19:37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황폐하다. 난생 처음 간 동쪽의 땅끝, 호미곶이었지만
에메랄드빛이 철렁이는 아름다운 해변을 상상한 것도 아니었지만
해변을 따라서 난 길을 가는 내내 황폐하고 지저분한 해변을 보자니
내 마음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방파제탓일거다.
파도는 시멘트 덩어리의 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부딪히며
대신 모래라는 녀석을 하나둘, 바다로 가져가버린다.

사람들도 역시, 어쩌면 벽이라는 것을 미리 깨달았어야 하는데...
여전히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억지로 말들을 해가면서
나에게 계속해서 부딪혀오며 나의 영혼을 가져가버린다.

그나마 엉성하고 흉한 몸을 감추고 있었는데,
하나둘, 영혼을 잠식하면서 드러내는 것은 추한 본능뿐이다.
믿지 말았어야 했을까? 원래 벽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을까?
사람에 대한 신뢰감은 바보같은 놈이나 하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사이를 규정하고 관계짓는 모든 단어들이
모래알처럼 바람에 날려 없어질 것들이
사회와 문화의 껍데기를 쓰고 애써 무게를 잡고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황폐하다.
점차 영혼은 잠식하고 드러나는 본능때문에 황폐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08/13 19:37 2010/08/13 19:37
Tag // , ,